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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목 기분 좋은 청첩장
    가을 햇볕 나른한 오후. 한 통의 청첩장을 받았습니다.
    ‘고지서가 왔구나’
    ‘예식장 가려면 또 시간깨나 뺏기겠구먼’
    ‘여긴 몇 만원짜리지?’
     ‘요즘은 가을이라서 그런지 일주일에 두, 세 건이니...
    ’‘이번엔 또 누구야’ 등을 되뇌이면서 청첩장의 발신인을 보곤 또 한 번 얼굴이 일그러졌습니다.
    평소에 별로 친하지 않던 하청업체 직원이었기 때문입니다.
    내 결혼식에 하청업체 임, 직원들이 많이 오셨습니다. 이 분도 그 때 오셨던 분 중의 한 분이었는데
    ‘나도 네 결혼식 갔으니 너도 내 아들 결혼식에 오너라’라고 품앗이를 강요받는 것 같았습니다.
    축의금까지 받았으니 예식장에 안 갈 수도 없는 처지는 맞지만 그렇다고 꼭 친하지도 않은 나에게까지 고지서 같은 청첩장을 보낼 필요가 있나 하는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청첩장을 열어 보았습니다.
    그런데 청첩장은 흔히 받던 인쇄소에서 찍어 낸 청첩용 카드 용지가 아니었습니다.
    ‘뭐지?’
    예쁜 결혼식 사진들이 설명과 함께 아름답게 배열된 청첩장 내용은 이랬습니다.
     
    “인사 올립니다.
    지난 토요일 OOOO컨벤션에서 부족한 저의 장남 김O식군과 이O현의 차녀 이O진양이 가족들만을 모시고 결혼을 하였기에
    뒤늦게나마 서면으로 인사 올립니다.

    모시고 함께 결혼식을 거행할까도 생각했지만, 바쁘신 분들께 번거롭게만 하는 것 같아 미리 통보하지 않고
    양가 가족들만 모여서 조촐하게 결혼식을 치루었음을 글로 대신하여 보고를 드립니다.

    이번에 결혼한 아이들이 철이 없고 부족한 게 많습니다.
    새로 가정을 꾸민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축복해 주시고 때론 자식처럼 따끔하게 꾸짖어 주시는 등 지속적인 지도 편달을 바랍니다.
    결혼한 아이들과 함께 찾아뵙고 인사를 올려야 예의인줄 알면서도 사진과 서면으로 인사드리게 된 점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가내 두루 평안하시기를 바랍니다.
    감사 합니다“
    양가 직계 가족들만 모여 진지하게 새로 탄생하는 신혼부부를 축하하는 모습이 사진 속에서 묻어났습니다.

    조금 전까지 청첩장을 받고 고지서를 받은 것처럼 불쾌해 했던 나 자신이 초라해졌고 미안한 마음에 멋쩍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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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작 결혼하는 신랑이나 신부는 알지도 모르면서 신랑이나 신부 부모와의 체면 때문에 할 수 없이 결혼식에 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혼주 만나 악수하고 축의금을 내고 방명록에 내 이름을 써서‘나 분명히 왔습니다’라고 출석체크(?) 한 후 예식장 안에는 들여다보지도 않고 식당으로 가서 밥 먹고 오는 게 일반적인 결혼식 문화였습니다.
    새로 탄생하는 신혼부부의 성스러운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해 주기보다는 우리 집 행사 때 얼마 받았으니 너희 집 행사 때 그 액수만큼 되 갚는다로 변질된 우리의 결혼 문화가 아쉽습니다.


    조금 오래된 일입니다.
    당시 대통령의 왼팔이라는 실세 분의 딸 결혼식에 참석한 적이 있었습니다.
    혼주와 악수를 하고 눈도장을 찍으려고 늘어 선 줄이 거짓말 보태지 않고 100m는 넘었습니다.
    저도 그 대열에 선채 30여분간만에 그 실세분과 악수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악수하면서‘축하드립니다’의 내 말에‘찾아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의례적인 말 한마디 듣기 위해서~
    나는 그 때나 지금이나 그 분의 딸 이름도 모릅니다.
    다만 정권 실세에게 잘 보이려는 엉큼한 생각으로 참석했기에 결혼하는 딸의 입장에서 보면 나 같은 사람은 진정한 하객 이라고도 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항간에는 결혼식을 통해 엄청난 정치 자금을 받는 거라는 얘기를 듣기도 했습니다.


    지인중에 대통령선거 때의 활약을 인정받아 새 정부 들어 금융관련단체의 임원을 한 분의 경우도 비슷합니다.
    그는 재임 중에 딸을 결혼 시켰는데 아마도 수억원의 축의금을 받았으리라고들 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나부터도 혼주가 고위 임원이기에 평소 다른 데 보다 몇 배 더 많이 축의금을 냈으니까요.
    그런 재미로 고위 공직자나 회사 임원들은 재임시 자녀들을 결혼시켜야 수지 맞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니까요.


    조선일보 김대리의 뒷담화에 소개된 청첩장 돌리기 미안했는데... 라는 글을 일부 인용 합니다

    (전략)

    결혼 전 회사에서 청첩장을 돌리며 L 대리는 새로운 고민에 빠졌다.
    분명히 회사에 얼굴과 이름을 아는 사람은 많은 것 같은데, 그들이 과연 개인적 경조사를 알려서 초대할 정도로 친분이 있는 사람인지 확신이 서질 않는 것이다.
    즉, 결혼이라는 개인적 대사(大事)를 앞두고 생각할 때 청첩장을 주자니 '오버(over)'하는 것 같은 회사 직원도 있고,
    청첩장을 안 주자니 결례를 범하는 것 같은 어정쩡한 관계가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더라는 것이다.
    결국 L 대리는 찍어놓은 청첩장 가운데 50장 정도는 끝내 돌리지 못했다.
    결혼식이 끝나고 신혼여행을 갔다 온 L 대리는 두 번째 고민에 빠졌다.
    그래도 청첩장을 돌린 사람은 개인적 친분이 두터운 사람이라고 판단했는데,
    축의금 명단에 빠져 있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그가 회사에서 청첩장을 건넨 사람 중 축의금을 낸 사람은 60% 정도라고 한다.
    어정쩡한 관계라고 판단한 사람은 빼고, 나름대로 친분이 두터운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청첩장을 건넨 사람들의 '친분에 대한 회신율'이 60%에 불과하다는 것은 L 대리에겐 일종의 충격이었다   (후략)


    김대리처럼 청첩장을 줘야하는지 말아야하는지 고민하게 되는 가장 큰 이유 중에 하나는 결혼 축의금 때문일 것입니다.
    분에 넘치는 호화로운 결혼식은 경비가 많이 들고 많은 경비를 충당하려면 하객을 많이 불러야 하므로 청첩장을 남발하게 되어 청첩장을 받는 사람이나
    보낸 사람 모두가 불편할 수 있습니다.
    친하지도 않은 하객이 많이 참석해봤자 시끌벅적 도떼기 시장처럼 어수선할 뿐입니다.
    분에 넘치는 사치성 호화로운 허세를 버리고 별로 친하지도 않은 사람에게까지 청첩장을 남발하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총리와 장관 그리고 차관들이‘작은 결혼식’캠페인에 동참한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매우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양가 가족을 비롯하여 꼭 필요한 몇 몇 분만 모여서 서로 축하해 주고 축하 받는 의미 있고 성스러운 결혼식을 권하는 마음에 이 글을 올립니다.
    심지


    작성일자 2019-07-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