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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목 "넌 안받는 줄 알았다"
    “ 넌 안받는 줄 알았다!“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면서 바뻤고 또 나(深至))같은 부족한 사람이 쓴 글을 누가 읽어 주겠냐는 생각에 深至코너에 오랬동안 글을 올리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중 아내가 深至코너에 방문하는 숫자가 2천5백명이나 된다며 글을 계속 올리면 좋겠다고 북돋아 주기에 용기를 내어 글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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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승의 날입니다.
    1977년 나는 운좋게, 서울의 A급 학교로 분류되는 D 초등학교에 부임하였 습니다 (당시는 학부모의 경제적 수준에 따라 교사들간에 비공식적으로 학교를 A~C급으로 분류했었음)
    경험이 부족한 초임교사에게는 대체적으로 무난한 4학년이나 5학년 담임을 맡깁니다.
    예상대로 나도 4학년 담임으로 배정됐고 신학기라며 몇 분의 학부모께서 새로 부임한 나를 찾아오셨습니다. 학부모께서 방문하시면 자녀에 대해 몇마디 대화를 나눈 후, 슬쩍 돈 봉투를 놓고 가셨습니다.
    돈 봉투를 줄 때, 돈 봉투를 직접 제게 건 낸 분은 한 분도 없었습니다. 과일상자나 음료수 상자 속에...
    노련한(?) 어느 고참 어머님은 책을 선물로 주셨는 데, 책 속에 돈 봉투가 들어 있었던 적도 있었습니다. 봉투를 주는 데 선수(?)가 되신 학부모님들은 담임 선생님과 봉투를 주고 받느 라 멋쩍은 분위기를 만들지 않았습니다. 
    돈이 담긴 하얀 편지봉투에는 한결같이“촌지(寸志)”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솔직히 전 촌지 라는 낱말 뜻도 그 때서야 알았습니다.
    촌지를 처음 받은 날, 옆 반 선생님께 아무개 엄마가 촌지를 주고 가셨는 데 어떻게 하여야 하냐고 자문을 구했습니다.
    그 선배 교사는“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해! 주시면 받는 거지...”라고 답했습니다.
    그 날, 퇴근 후 받은 촌지로 동료 교사들께 한 턱 쏘았습니다(받은 촌지 금액보다 술값이 더 지출됐지만...)
    술좌석에서 선배교사들은 새내기 교사인 내게 이런저런 얘기를 많이 들려 주셨습니다.
    차선생반의 반장 누구 엄마는 매월 1만원씩 가져 올거고, 부반장 누구 엄마는 매월 5천원짜 리고, 여자 부반장 누구 아버지는 택시기산데 형편이 어려워 소풍 때와 운동회 때만 인사(?) 온다는 등등...
    누구 엄마는 얼마짜리고 1년에 몇 번 올거라는 둥... 마치 우리반 아이들의 사정을 꿰뚫고 있는 듯 했습니다.
    담임을 맡은 한 달 남짓에 몇 분의 학부모에게 받은 촌지 금액이 3만 5천원이나 되었습 니다.
    당시 교사 초임 월급이 7만 5천원이었으니까 촌지로 받은 3만 5천원은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니었습니다.
    그 때 난 철모르는 총각선생인지라 촌지 받은 날은 의례히 동료교사들에게 술을 샀고 촌지 는 술값으로 몽땅 사라졌습니다...
    교직에 부임한 지 한 달 정도 지난 어버이날!
    고향의 부모님을 찾아뵈었습니다.
    당시는 서울 인구 억제 정책이 시행되던 때라 지방출신 교대생이 서울로 발령 받는 것은 불가능하던 때였습니다.
    그런데 나는 운좋게 첫 발령을 서울로 받았습니다. 그것도 D초등학교로...
    권사님이셨던 어머님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기뻐하셨고, 동네 분들까지 나보고 출세했다며 마치 자기 자식 일이라도 된 것처럼 축하해 주셨던 몇 분이 제집에 놀러 오셨습니다.
    “아~이~  서울 간 차선상님, 오셨다면서유~”
    나는 교대를 졸업하고 발령장을 기다리던 2년간 고향에서 낮에는 농사를 돕고 밤에는 읍네 학원에서 영어를 강의 했었습니다.
    농사를 지으며 동네 분들과 친했었기에 즐거운 담소가 이어졌습니다. 
    “그런디 서울 선상님들은 봉투도 많이 들어 온다면서유~“  옆집 영숙 엄마가 마루에 걸터 앉으시며 물었습니다. 함께 계시던 경철엄마도 도현 엄마도 마치 다 알고 있으니 바른 대로 말하라는 듯 제 얼굴을 빤히 처다 보셨습니다.
    나는 뭐 큰 돈이 들어오는 건 아니라면서도 촌지받은 것을 은근히 자랑 하던 중이었습니다.
    그 때, 방에 계시던 아버지께서 한 말씀 하셨습니다.
    “얘! 막내야~ 너도 돈받니?”
    “.......”
    “넌 안받는 줄 알았다.”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
    한참 잘난 척 자랑삼아 떠들던 나와 동네 아주머니들 모두에게 순간 정적이 흘렀습니다.
    아버지의 말씀을 들은 나는 멋쩍었습니다.
    아버지는 말씀이 별로 없으신 분입니다. 아버지는 동네에서 존경받는 큰 어른이십니다. 아버지는 동네 이장을 18년간 하셨습니다. 모 TV 방송국 드라머 “전원일기”의 최불암님의 역할이랄까요?
    “녜?....”
    (정적이 흐른 뒤)
    “아~ 녜 알겠습니다. 받은 촌지는 돌려주고 앞으로는 촌지를 받지 않겠습니다”“
    나는 얼떨결에 답을 했고, 부자간의 대화내용에 동네 아주머니들은 머쓱하여 촌지얘기는 쑥 들어 갔던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는 박정희 대통령 시절로 초등학생에게까지 1인 1통장을 갖게 했으며 매월 1회 의무적으로 아이들이 저축하는 날이 있었습니다.
    다음 달, 나는 촌지 받은 액수만큼씩 아이들의 통장에 저금시켜 주었습니다.
    7만여원 받는 급여에서 3만 5천원을 갚고는 한 달 내내 쩔쩔맸지만, 마음은 편했습니다.
    일은 엉뚱한 데서 터졌습니다.
    한 달 정도 지난 어느 날, 옆 반 선배 교사가 불러서 갔더니, 언성을 높이며
    “차 선생만 촌지를 받지 않으면 우리는 어떡하나?....”
    “자네만 깨끗한 척 하면 되느냐는 등...”
    “그렇다면 촌지 받는 우리들은 학부형들에게 어떻게 보이겠느냐?...”
    라는 등... 마치 난 큰 죄라도 진 듯 면박을 받았습니다.
    “......”
    ‘촌지를 다시 받아야 하나?....... 받지 말아야 하나?.......’
    사실 여러 날 고민하다가‘하나님을 믿는 자답게 정직한 사도를 걷자! 몇 푼의 촌지보다 제자를 키우자!’라고 결심 하였고 교직을 그만 둘 때까지 결심을 지켰습니다.
    촌지를 받지 않는 다는 것은 교직사회에서 다른 교사들에게 왕따당할 각오를 해야 하는 어려운 결정이었습니다.
    다행히 D초등학교에는‘교사신우회’가 있어 교회 다니는 교사들 10여명이 모여 1주일에 한번 예배를 드리곤 했습니다.
    나는 ‘믿는 우리부터 촌지를 받지 말자’고 제안했고 ‘촌지 안 받기 운동’을 전개하여 10여명의 동료교사들이 동참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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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촌지’를 주고 받는 것 자체가 모두 죄악이라고까지 생각지는 않습 니다.
    ‘스승의 은혜에 감사해서~’‘ 진정한 마음에서 우러나는 답례로~’
    마음을 주고 마음으로 받는다면 아름다운 미덕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 합니다.
    책을 다 배우면 책걸이라 하여 스승님께 감사하는 미풍이 있었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몇몇 함량미달 교사들 때문에 마치 모든 교사가 촌지나 강요하는 파렴치한으로 매도되는 매스컴을 대할 때 마다 이는 교사와 제자 그리고 학부모 모두에게 피해자가 되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매스컴에서 촌지사건을 다룰 때마다 인터뷰 장면이라든지 내용에서 부풀려지는 듯하여 오해를 풀고자 몇가지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첫째는 모든 교사가 촌지를 밝히지 않습니다.
    제가 다녔던 당시, 그 학교의 교사는 110여명이었는 데 그 중에 10여명은 촌지를 전혀 받지 않았습니다.
    촌지를 가져오지 않는 아이를 벌주고 뒤에 앉히는 등 불이익을 주었다며 언론에서 문제시하는 그야말로 촌지를 밝히는 교사도 10~15명 정도였습니다.
    그외 대부분의 교사들은 촌지를 주면 받고 안 주면 안 주는가 보다 하는 분들이었습니다. 교사도 사람인지라 촌지 받은 아이에게 관심을 더 갖게 되는 것은 사실이겠지만, 그렇다고 촌지를 받고 안 받은 것으로 아이들을 차별하는 그런 못된 교사는 거의 없었습니다.
    결론으로 말한다면 촌지를 전혀 받지 않는 교사가 10% 정도, 악랄할 정도로 촌지를 밝히는 교사가 10~15%, 나머지 75~80% 교사들 대부분은 촌지와 무관 하셨습니다.
    10~15%의 못된 교사들 때문에 훌륭하신 90~85%의 스승들이 파렴치범으로 매도되어서야 되겠습니까?


    둘째, 촌지를 주었다는 학부모의 액수와 촌지를 받은 교사의 액수가 일치 하지 않았습니다.
    교사에게 준 촌지의 액수를 부풀리는 학부형이 있었습니다.
    담임을 만나 촌지를 주고 나오는 길이라며 허세부리는 자모들끼리의 대화를 우연히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봉투(촌지)에 얼마를 넣었냐는 어떤 자모의 질문에 한 분은 1만원을 넣었다고 했고, 다른 한 분은 1만원은 작지않냐며 3만원을 넣었다고 자랑삼아 말하자 그 다음 내가 아는 종오엄마도 3만원을 넣었다고 하였습니다.
    마침, 퇴근 때 종오 담임이 종오엄마에게 촌지를 받았다고 저녁을 샀는 데, 봉투에 담긴 금액은 1만원으로 아까 종오엄마가 다른 엄마들에게 말한 3만원이 아니었습니다.
    아무도 담임에게 준 촌지의 액수를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다른 엄마에게 촌지를 많이 주었다고 부풀려 말하였습니다. 허세부리는 엄마로써는 충분히 부풀려질 수 있겠다 싶었 습니다.
    익명의 학부모들이 촌지를 주었다고 인터뷰하는 액수가 부풀려졌을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촌지 때문에 존경받아야 할 스승의 권위가 마녀사냥식으로 도매급으로 격하되어선 안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후배 교사들에게 촌지를 받지 말기를 권합니다.
    비록 내가 현직에서 촌지를 받지 않았지만, 나는 촌지보다도 더 많은 것을 받았습니다.
    첫째는 학부모들간에 촌지받지 않는 선생으로 소문나니까 학년초 반 편성할 때 내 반으로 배정 되기를 원할 정도로 인기를 얻습니다.
    둘째는‘아이들이 촌지에 대해 뭘 알겠나?’하시겠지만, 그 때 내가 촌지 받지 않는 것을 아이들이 다 알고 있었더라구요... 어떻게 아냐구요? 지금까지도 제자들이 찾아와선 그 때 얘기를 하거든요...
    교사들께 다시한번 부탁하는데“몇 푼의 촌지보다 제자를 얻는 스승”이 되시길 바랍니다.
    아울러 학부모들께 부탁드리고 싶은 말은, 설령 교사가 잘못한 경우가 있었더라도  자녀 몰래 조용히 해결하시기를 바랍니다.
    자녀가 교사에 대해 존경심이 떨어지면 결국 선생님의 말을 듣지 않게 되고 그로 인한 피해는 결국 자녀에게 돌아갑니다.
    학창시절, 학부모께서 좋아하는 선생님의 과목은 점수가 좋았던 것을 감안하시면 이해가 될 것입니다.
    스승의 날을 맞이하면서 저를 가르쳐 주셨던 스승님들께 감사드리며, 우리나라에 존경받는 스승이 많아졌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작성일자 2019-07-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