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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의금(弔意金) 분배 다툼”에 관한 소견

    ‘조의금 분배, 법을 따르자니 형제가 싸운다’라는 제목의 신문기사가 실렸기에, 기사내용을 일부 인용하여 재구성합니다(조선일보 2012.7.14.)
    법엔 'N분의 1'
    조문객 많이 온 형제는 "내가 뿌린 돈, 내가 가져야"
    적게 온 형제는 "부모 사망 때문에 온 돈 동등하게 나눠 가져야"
    사이 안 좋고 액수 크면 다퉈...
    형편 어려운 형제에 조의금 더 줄 수 있는 문제...
    형제· 자매 우애 없을수록 다투다 義 상하는 경우 많아...
    6형제 중 셋째인 회사원 김모(46)씨는 최근 모친상을 당했다. 장례비용으로 4000만원이 들었고 조의금(弔意金)은 7000만원 정도가 들어왔다.
    대기업 직원이던 셋째 김씨와 사업을 하는 넷째의 조문객에게서만 각각 3000여만원의 조의금이 들어왔고, 사회활동이 두드러지지 않았던 다른 네 형제 앞으로 온 조의금은 각 100만~200만원에 그쳤다.
    문제는 장례를 치르고 조의금을 나누는 과정에서 생겼다. 여섯째가 '남은 조의금을 형제 수대로 6등분 하자'고 한 것이다. "조의금도 결국 돌려줘야 할 빚인데 그걸 왜 나눠야 하냐"는 셋째·넷째와 "결국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생긴 돈 아니냐"는 여섯째의 의견이 팽팽히 갈렸고, 결국 셋째와 넷째가 각각 1500만원, 나머지 형제들이 200만원씩 가지기로 했다. 장례에 4000만원이 들었으니 일종의 타협을 한 셈이다. 하지만 몇 달 후 명절에 여섯째가 "그때 균등하게 나눠야 했다"며 다시 이 문제를 들고 나와 지금은 거의 의절 상태다....
    ...............................(이상 기사내용)


    이렇듯, 조의금 문제로 인해 자식들 간에 의(義)가 상하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고 합니다.
    오죽하면 “초상치루고 싸움난다”는 말이 있겠습니까?
    그렇다고 미천한 제가 조의금 분배 방법에 관하여 감히 시시비비를 가리고자함이 아니라,
    저희 어머니의 경우를 추천하고 싶어 이 글을 씁니다.


    새벽! 동이 틀 무렵 어머니는 긴 숨을 몰아 쉬는가 싶더니 평온하신 모습으로 숨을 거두셨습니다.
    밤새 어머니를 지켜본 저로서는 임종(소천)이라는 그 시각을 분기점으로 이승과 저승과의
    어찌할 수 없는 무력감을 느꼈고, 다시는 올 수 없는 어머니와의 긴 이별의 허무함으로 5일 장례 내내 울어 눈이 퉁퉁 부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장례를 마친 후, 아버지와 6남매가 모여 조의금 정산을 하였습니다.
    장례비를 치루고도 당시 시골에서는 드물정도로 조의금이 많이 남았습니다.
    저의 형제도 신문기사의 김씨네처럼 형제마다 조문객수가 달랐습니다. 당연히 관련 부조금도 차이가 있었구요...
    조의금 잔액을 어떻게 처리할까? 방법론에서 잠시동안 침묵이 흘렀었고, 누군가가“아버님에게 드리고 일부는 요즘 막내가 힘드니까 막내주자”는 의견을 제시했습니다.
    당시, 제가 사업에 실패한 직후라서 경제적으로 힘들었기에 저를 돕자는 의견에 모두 동의하는 분위기였었습니다.
    가난하여 동정을 받는다는 것에 멋쩍기도 했지만, 어머니를 오래오래 기념하고 싶은 마음에
    ‘조의금을 쓸 것이 아니라, 대덕교회에 장학금으로 기부하고 어머니 장학재단을 설립하는 것이 어떠냐?’냐고 제안을 했습니다.

    대덕교회는 어머니께서 평생 섬기셨던 고향 교회입니다.
    아버지를 비롯해 형수님들과 매형을 포함한 6남매 모두가 찬성하였습니다. 
    조문객이 많았던 형님, 누나도 조의금 분배 사용방안에 흔쾌히 동의한 것에 저는 지금도 고마워하고 있습니다.
    조의금은 평소 어머니가 섬기시던 대덕교회에 장학금으로 기부하였고, 교회는 어머니의 이름을 따서“박주삼권사 장학회”를 설립하였습니다.
    교회는 장학위원회 이사장을 저의 큰형님으로 위촉하였고 장학위원회는 저의 형제들과 협의 하여 운영되고 있습니다. 
    장학금 수여식은 주일저녁 장학예배로 대덕교회 연중 행사로 정하여 매년 시행하고 있습니다.
    장학예배일에는 유명한 CCM 가수. 탈렌트. 간증자 등을 모시고 초청집회를 겸하였습니다.
    마침 저의 셋째형님이 방송국에 근무하시며 전국 농어촌 방송선교회를 운영하시기고 탈랜트 차태현이 친조카이기에 유명 연예인들을 초청할 수가 있어 시골교회의 초청강사로는 매년 최고 수준입니다.
    믿지 않는 동네분들까지 초청하여 저녁을 대접하는 등 장학 예배일은 축제분위기입니다. 
    당시 조의금이 많았다고는 하지만, 장학금을 수여하기엔 역부족이었습니다.
    그래서 장학예배 당일 헌금은 장학위원회로 전액 귀속하였고, 아버지를 비롯하여 저의 6남매는 매년 형편껏 헌금하여 장학기금을 적립하였고 십수년이 지난 지금은 제법 규모가 커졌습니다.
    장학기금이 적을 때는 교회내 중, 고등부 학생 서너명에게만 제한하였으나, 이제는 교회를 다니지 않는 동네 중고등 학생과 신학 대학생에게도 대상자를 확대하고 있습니다.
    금년 초에도 중, 고, 대학생 여러명에게 장학금을 지급했습니다.
    교회 중등부이었던 어린 학생이 매년 장학금을 받았고 지금은 신학대학에 다니는 걸 보면서 뿌듯함을 느끼곤 합니다.
    무엇보다도 좋은 것은 장학예배 때 아버지를 비롯하여 6남매가 모두 모여 어머니를 생각하며 예배를 드려 형제간에 우애가 돈독하여 지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조의금을 나눠 쓰면 순식간에 고인이 잊혀지지만, 장학기금으로 기부하는 등의 뜻있게 사용하면 고인의 뜻이 오래오래 기념되는 등 장점이 많습니다.

    조의금 분배로 형제간에 다툰다는 기사를 읽고 안타까운 마음에 혹시 이런 방법은 어떨까 하고 제안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올립니다.
    비록 어머니는 하늘 나라에 가셨지만 ‘박주삼 권사 장학회’로 오래오래 제 곁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2012. 7. 14 조선일보를 보고...
    작성일자 2019-07-08